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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가이드포스트] 빛으로 음악으로(커버스토리)

1,355 2019.01.17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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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에 독일의 명문 음대 마인츠에 최연소로 합격하고, 열아홉 살부터 독일 정부가 주최하는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과르네리를 무려 11년간 무상으로 대여 받은 데 이어 4년 전부터는 익명의 후원자가 대여해 준 1735년산 과르네리를 가지고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 그녀는 유니버설뮤직코리아가 수여하는 골드디스크를 두 번이나 받은 자타가 공인하는 음악가다. 이토록 화려한 그녀의 이력만 보면 음악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천생 음악가일 것만 같다. 하지만 그녀는 미국 TED와 미국 국회 컨퍼런스에서 강연자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공식 홍보대사로 활동했으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평화혁명프로젝트’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진행하는 등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녀가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무대가 교회에서 갖는 ‘간증 찬양 콘서트’다.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힘이 ‘찬양’에 있다고 믿기에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사람들과 나누기 위함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성장했지만 한국의 드보르자크가 되고 싶을 만큼 한국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를 만나 봤다.


바이올린은 언제 시작했나요?

 

어머니가 바이올리니스트예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연주를 보고 들으며 자랐고, 언제나 제 곁엔 바이올린이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것 같아요. 부모님의 강요나 권유 같은 건 없었어요. 부모님의 유학 중에 독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입학 즈음에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어머니는 그 무렵부터 대학에서 강의하기 시작했어요. 주로 대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기존 연주자와 입시생들이 제주도와 울산에서까지 와서 가르침을 받았어요. 하루 24시간 한정된 시간이라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는 제게 다른 건 못해 줘도 바이올린을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 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는지 제 또래의 재능이 있는 아이들도 가르치셨어요. 솔로도 중요하지만 더 뛰어난 연주자가 되려면 다른 파트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어머니는 오케스트라도 창단하셨는데, 몇 년 뒤에는 저를 포함한 영재들로 구성된 영스트링 오케스트라도 만들어 정기 연주회를 다녔어요. 지금은 이런 실내악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려졌지만 그때만 해도 파격적인 행보였죠. 당시는 입시나 시험 때 연주할 곡만 목숨을 걸고 연습하는 주입식 교육이 대세였죠. 얼마 전에 뜻하지 않게 당시 레슨을 받던 오빠를 만났는데 침대나 소파에서 뛰면서 자유롭게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저를 기억하더군요. 그때 어머니가 앞으로 어떤 무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연주하려면 저렇게 하는 게 좋은 연습이 된다고 말씀하셨대요. 지금도 그 말씀이 인상적이어서 잊히지 않는다고 말하더군요. 돌아보니 어린 저는 친구들과 놀며 배우며 최고의 교육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게 교육인지도 모른 채 말이죠.

 

유년 시절부터 열정이 대단했네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경험이 많은 것 같은데, 요즘 교회에서도 연주를 많이 한다고 들었어요.

 

네. 콘서트와 토크를 함께하는 ‘콘서톡’을 일반 공연이나 기업, 포럼 등에서 해 왔는데 그 뿌리가 된 것은 교회에서 해 오던 ‘찬양 간증 콘서트’예요. 콘서톡은 연주하면서 삶을 나눈다 해서 제가 이름 붙인 거예요. 저를 잘 모르는 분들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여기에 와서 뭐 하는 거지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음악적 재능으로 사람들에게 ‘함께 힘을 내어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자’고 용기를 북돋우고 싶어요.


그러고 보니 ‘콘서톡’은 제가 독일에 살 때 전도하던 것에서 시작된 것 같네요. 거리에서 전도지 대신 사과를 나눠 주며 이 사과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전하다가 독일 정부가 저에게 대여해 준 3대 명기인 ‘과르네리’를 가지고 간증하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바이올린으로 찬송을 연주하고 간증도 하고 그랬어요.
 

독일에서 많은 걸 경험했고 그것은 그대로 제 인생의 자산이 되었지만, 그만큼 힘든 일도 많았어요. 한때 우울증에 걸려서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이고 과연 내일이 있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너무 괴로웠어요. 그때는 기도마저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해졌어요.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많이 답답했어요. 교회에서라도 사람들을 만나 기도를 부탁하고 함께 찬양하며 뜨겁게 예배드리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그럴 수 없었어요. 아무 때나 예배당에 들어가 기도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어요. 당시 독일교회는 2주에 한 번 예배드리는 교회도 있었고 평일엔 문을 굳게 잠그는 교회도 많았거든요. 아무리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랐어도 이미 외모에서부터 차이 나는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말 못 할 위축감도 있었고 영적인 갈급함도 컸어요.


하지만 전 제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어요. 음악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전하겠다는 사람이 우울증이라니, 도무지 용납이 안 됐어요. 저 자신을 속이고 제 감정을 속이니 우울증이 더 깊어질 수밖에요. 그 시절 저의 생명줄을 잡게 한 것이 말씀이었고, 찬양이었어요. 저는 저 혼자 그 힘든 시기를 지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니 하나님께서 함께 제 손을 이끌어 지나가게 하셨어요.


이때 저를 치유한 찬양들로 첫 번째 찬양 앨범을 만들었어요. 이 곡들로 교회에서 연주했을 때 놀라운 경험을 했어요. 제 연주를 듣고 표정이 살아나고 그 생명에 활기가 생기는 사람들을 보았거든요. 지난 시절의 아픔과 상처, 이를 위로하고 안아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연주했는데, 그것이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똑같은 위로와 어루만짐을 경험하는 것 같았어요. 그 교회 목사님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저의 이야기를 같이하면 좋겠다면서 일곱 교회를 소개시켜 주셨어요. 이때를 계기로 클래식 공연장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포럼 등에서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일엔 교회에서 간증이 함께하는 콘서트를 하게 되었어요. 이로 인해 제가 활동할 수 있는 지경이 넓어졌어요. 과연 하나님은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에요. 철저히 고립되었던 그 시기에 오히려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었잖아요. 지금도 제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어 가실 거라고 믿어요.

 

 

--- 이후 내용은 2019년 2월호 잡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월간 가이드포스트 해당 기사 원문 링크:

https://guideposts.co.kr/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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