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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지 Queen]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 내겐 오직 음악만이

2,920 2017.03.0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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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좌절, 불안이 만연한 요즘을 우리는 모두 상실의 시대라고 부른다.


희망이 없고, 미래도 꿈꿀 수 없는 2030 오포 세대의 청춘들.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해도 버텨 내기 힘들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작은 몸짓의 가냘픈 여성이 감히 위로의 말을 건넨다.

 

“삶을 타인을 위한 치유의 통로로 만들어 보세요. 당신의 인생이 변할 것입니다.”

 

오로지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박지혜.
그녀는 성공에 대한 집착과 완벽한 음악에 대한 지나친 중압감으로 우울증에 빠져 생사를 오간 적이 있다고.

 

그런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은 무엇이었을까?

 

 

독일에서 태어난 박지혜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일찍이 다양한 음악을 접하며 자랐다. 초등학교 때 세계적인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고토 미도리의 연주를 처음 듣고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품은 그녀는 “그분의 연주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열정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나도 이런 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 일종의 갈망이 제 꿈의 씨앗이 되었던 거죠. 감미로우면서도 매끄러운데, 약간 신경질적이기도 하고, 또 굉장히 섬세했어요. 분명히 기존에 들었던 음악과 같은 음악, 같은 악기이지만, 그 안에서 남성적인 소울을 처음 느꼈던 것 같아요.”
바이올린이 장난감에 불과했던 당시 그녀는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을 진지한 도구로 다루기 시작했다. 특히 미도리의 연주를 밤낮없이 들으며 끊임없이 모방하려고 애썼다. 참 감사하게도 미국 유학 때 미도리 선생 앞에서 연주할 기회가 생긴 그녀는 극찬을 받았고, 그 뒤 그의 레슨을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완벽한 연습 벌레, 중압감으로 생긴 마음의 병

 

사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독일 총연방 청소년 콩쿠르를 비롯해 각종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내 왔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갖고 태어난 것은 음악적 재능이 아니라 노력하는 재능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하루에 열여섯 시간까지 연습에 매달릴 정도로 지독한 연습 벌레였던 그녀는 미도리뿐 아니라 울프 횔셔, 제이미 라레도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애정 아래 사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도 그녀는 만족할 수 없었다. 오로지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것을 자신이 이루어야 할 목표로 삼은 그녀는 거기까지 가 닿기에는 늘 자신이 모자라고 부족하며,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중략)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 위해 기꺼이 감수했던 그녀의 뼈아픈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독일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대여받은 최고의 명기 페트루스 과르니에리가 바로 눈앞에 있었지만,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던 그녀는 온종일 눈물만 주르륵 흘리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병세는 갈수록 더 악화되었다. 의사는 그녀가 언제 급사할지 모른다며 경고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래, 지혜야, 앨범을 만들자. 응?’

 

무엇보다 바이올리니스트로 성공하기 위해 쏟아부은 그녀의 노력이 죽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돼 버릴까 봐 노심초사한 엄마가 앨범을 만들자고 제안해 왔다. <홀리 로드(Holy Lord)>. 사실상 그녀의 유작이 될 뻔했던 음반이었다. 

 

“<홀리 로드>는 찬송가로 이루어진 앨범인데요. 우울증으로 힘든 나날을 보낼 때 작은 한줄기 위로와 희망이 되어 준 노래를 모아 담았어요. 비록 제 꿈은 이루지 못하고 떠나더라도 그 음반에 담긴 곡들이 저처럼 고통에 빠진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위안과 치유의 음악 순회공연

 

그때까지만 해도 유작 앨범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음반 발매 후 보통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서지 않는 무대에 오르기도 마다치 않았다. 병원부터 교도소, 교회, 소록도의 한센인들이 있는 곳까지 자신의 음악적 치유가 필요한 데라면 어디든 찾아가 공연을 펼쳤다. 더 이상 누군가와 경쟁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평가받지 않아도, 혹독한 연습에 상처받지 않아도 되는 무대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음악이 그들에게 위안과 치유를 주기를, 그 마음까지 전달하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때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제가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니라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로 마음먹자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전혀 새로운 세상이 열렸어요.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자 했던 제 음악이 그 누구보다 저 자신을 위한 음악이 되었던 거예요.”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던 우울증도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갈고 닦아도 제자리걸음이었던 바이올린 실력도 일취월장했으며, 정통 클래식뿐 아니라 민요, 동요, 가요 등 모든 틀을 깨고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전천후 연주자로 꽃 피웠다.

 

새로운 삶의 희망과 위안

 

요란한 폭풍우가 걷힌 자리에 다시 당당히 서 있는 박지혜. 새로운 삶의 희망과 위안, 열정을 얻게 된 그녀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이 우리의 삶을 진정 행복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지 역설해 보였다. 2013년 캘리포니아 롱비치 TED 강연장에 오른 그녀는 청중들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기립 박수를 받은 그녀는 크리스 앤더슨이 뽑은 최고의 7인 중 한 사람으로 칭송되었다. 이후 그녀의 사연은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 KBS <강연 100도씨> 등 국내외 다양한 방송에도 전파를 타 유명세를 치렀다. 최근에는 자전적 에세이 <당신을 위한 음악이 나를 위로하네>를 펴내기도 한 그녀가 또 하나의 명언을 남겼다.

 

“진짜 중요한 것은 사는 듯 연주하고 연주하듯 사는 거였어요. 그렇게 삶과 예술이 연결될 때 진짜 음악이 시작됩니다.”

 

자신을 절망과 좌절, 불안으로 내몰았던 것도 음악이지만, 자신을 위로, 구원, 회복시켜준 것도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고 말하는 박지혜. 여전히 병원, 교도소, 교회 등 꼭 격식 있는 자리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음악이 필요한 곳에서 진솔한 마음으로 연주하는 게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사명감이 되었다.

 

(중략)

 

“지금도 우울증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 없어요. 우울증은 감기와 같아서 한번 걸렸다가 회복해도 나중에 또 감기에 걸렸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대처법을 알 수 있을 뿐이에요. 언제 또 다른 바이러스가 침투할지 모르죠. 오히려 우울증을 탈피했다고 하면 아마 그것은 조증일지도 몰라요.”

 

(중략)

 

“매번 같은 연주만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잖아요. 항상 새로운 것과 맞설 때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게 우울감이라고 봅니다. 연주자로서 없어서는 안 될 콘텐츠죠. 이제는 설사 중압감이 와도 저를 긴장시킬 수 있는 하나의 요소로만 받아들이려고도 해요. 자신 있습니다.(웃음)”

 

가까이 보아야 아름답다고 했던가. 멀리서는 마냥 화려해 보기만 했던 그녀는 사실 금수저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천재성을 타고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꿈에 대한 갈망을 결핍으로 활용했고, 뼈저리게 아픈 마음을 음악으로 치유하며 걸어 온 그녀의 인생사는 벅찬 감동으로 가득했다. 그녀가 전하는 위로와 열정의 메시지가 사뭇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향후 마스터 클래스로 후학을 양성해 나갈 예정이라는 박지혜. 이와 동시에 월드투어 콘서트까지 계획하고 있는 그녀가 앞으로도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의 본보기가 되어 주길 힘껏 응원해 본다.

 

 

 

출처: 여성잡지 퀸(Queen) 매거진플러스 |  http://www.quee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3476

취재 송혜란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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